어제 주일미사중 신부님의 강론 말씀은 한마디로 '감동'이었습니다.
마치 내일이면 떠나실 고별사를 하시는듯,
어제 새로 부임하셔서 인사하시는 신임사를 하시는듯,
지난 3년간의 사목시간들을 돌아보시고
일년 남짓 남으신 시간들을 새로운 마음으로 대하시는 신부님의 강론은
'감동' 그자체였습니다.
밤을 하얗게 새우시며 고뇌를 하신 신부님의 모습은 마치
예수님께서 피땀을 흘리시며 하얗게 새우신 그 밤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본당 신부님을 위한 고리기도와 고리미사가 시작된지 2년여 남짓, 그리고
신부님의 기도가 빠지지 않았던 기도회 모임, 그리고 개인적으로 또한
사제를 위한 기도가 얼마나 필요한지 깨달아 시작했던 매일 묵주기도...
이 모든 기도의 응답을 한꺼번에 받는듯한 은총이 쏟아져 내리던 미사시간이었습니다.
신부님의 솔직하신 심정을 듣고 그자리에서 회개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우리들이 신부님을 힘들게 했던 그 시간들도 다 잊으시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교우분께서 진심과 사랑으로 신부님께 드린 말씀을 흘려 들으시지 않으시고
되새기고 또 되새기시어 많은 묵상을 하신 신부님,
신부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신부님의 강론말씀을 짧게 줄여 올려 보겠습니다.
그날 미사시간에 참례하셨던 교우분들은 다 감동의 눈물을 흘린줄 알지만 혹시
못 들으신 분들을 위하여 다같이 감동을 받기 위하여 올립니다.
+찬미예수님
어제 밤에 한잠도 못이루고 새벽을 맞았습니다. 잠을 잘 잘수 있는것 또한 축복이라는
생각을 했던 밤이었습니다. 이곳 올랜도 본당에 부임한지가 3년이 되었으니 이제 일년 남짓
기간이 남았습니다. 저는 일기는 쓰지 않지만 사목일지는 씁니다. 사목일지를 들여다 보며
문득 드는 생각은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사람들만 많이 만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을 되돌아 봤을때 나는 어떤 사제였나..
곰곰 생각해봐도 저는 양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던 그저 그런 사제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반면에 양들에게서는 많은 사랑을 받았던 사제였음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왜 나는 양들에게 사랑을 주고 감동을 주는 목자가 되지 못했었나 하는 생각에 머물러
그후로 아마 잠을 이룰수가 없었었나 봅니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 대통령이 가진 문제가 '의사 소통'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얼마나 교우분들과 의사소통을 하면서 살았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얼마나 그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 했던가..
하는 생각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년여 남짓 남은 시간동안은 양들과 많은 의사 소통을 하며 사목활동을 해야겠다는
각오도 해봤습니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며칠 전 교우중 한분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감동을 주는 사목을 하셔야 합니다. "
그러면 감동을 받는 여러분의 자세도 필요합니다. 사랑이 우러난 감동을 서로 주고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 '감동의 사목'입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모두는 할 수 있습니다.
교우분이 읽으셨다는 신문을 찾아서 다시 읽어봤습니다.
그 글을 올리신 분이 마지막 글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감동의 사목'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도와 말씀' 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기도와 말씀중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기도는 청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신앙을 바탕으로 공동체 생활이 되어야 하는데 친교를 바탕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크고 작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기도와 말씀을 바탕으로 공동체 생활이 되어야 사랑으로 모인 친교가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공동체에 많은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곳에 있는동안 하지 못했던 건축문제도
그렇고 떠나기 전 정리를 해야 할 문제들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서로에게 감동을 줄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께 청합시다. 아멘."
2010년 7월 26일
표 미카엘 신부님의 강론 말씀 중에서,
한마음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