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있자나요,
어제는 종일 신부님 생각이 났어요.
일을 하면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자꾸만 ...

 

그때도 지금처럼,
하나도 변한것 없이 지금처럼
저는 애들 데리고 혼자 살면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애들은 다 커서 제 갈길들을 각자 열심히 가고 있는데
저는 아직도 그자리에 서서 하나도 변함없이
아직도 신부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운 신부님,
제가 애들을 데리고 집을 나와 작은 아파트에 있을때였어요.
지나 가다 들렀다시며 연락없이 오셔서
"냉면 먹고 싶다."
하시며 장 봐오신 것을 부엌에 슬그머니 놓으시며
아주 환한 웃음을 지으시던 신부님.

 

돌이켜 생각하면 사제관과 거리가 가깝지도 않은데
일부러 오신것 맞죠?
전화 연락이나 하고 오시지요..
하면서 말을 얼버무리던 나에게 그냥 웃으시던 신부님,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으셔서 그러셨던 것이지요?

 

신부님 있자나요 ,
저는 신부님께 미안한 것이 하나 있어요.
그때 남편과의 일로 힘들어 하고 있을때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
그 말씀을 하시게 해서 정말 미안했어요.
그일로 신부님 혹시 하늘나라 가셔서 야단맞으신 것은 아닌지..
그말 한마디,
"내 여동생이었으면 그냥 이혼시킨다."
신부님 그말씀듣고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마 모르실거예요.

 

그후의 일은 하늘나라에서 환히 다 보고 계시니 다 아시지요...

 

신부님 기억나세요?
그날 있자나요, 눈이 심하게 오던 날 말예요.
교우 결혼식이 있던 밤이었어요.
제가 일해야 하기에 결혼식에 참석을 못하게 되어서 저의 어머니가 못가시게 되자
신부님께서 그 먼 눈길을 어머니를 모시러 오셨었어요.
그런데 제가 배비시터를 못 구하여 어머니가 못 가셨지요.
그냥 가셔야 하는 신부님께서 그러셨어요.
"괜찮아, 지금 부지런히 가면 혼배 미사에 늦지는 않겠다."
하시며 또 환하게 웃으셨어요. 그러다가 또 한마디 하셨어요.
"그친구, 배비시터 해주겠다던 친구, 미워하지 마라.."

 

그런데 신부님 있자나요.
그뒤로는 하나 밖에 없던 그 친구와는 지금까지 연락도 않고 살고 있어요.
그때는 약속을 못 지켜서 신부님께 죄송했는데요..
지금은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 듣지 않아서 또 죄송해요.

 

그때 신부님은 작은 코롤라 타고 다니셨는데 그차로
많은 교우들 라이드 주셨다고 나중에 알았어요.
제차도 다 두고 집을 나와서 차가 없던 제게 신부님과 같은
코롤라 사게 해주신 분도 신부님이셨어요.
차 딜러도 데리고 다니시고..
코사인 해주실 분도 구해 주시고..
그땐 참 감사했었어요.

 

오래된 일들이라, 한 십칠년쯤 전일이라 다 기억은 못해도
또 그일도 기억해요.
그렇게 살다가 집을 샀을때 있자나요.
꼭 신부님께서 사실 집을 사신 것처럼 얼마나 기뻐하시든지..
뒷뜰이 넓어 잔듸깍기 힘들었는데 자주 오셔서
잔듸도 깍아 주시곤 하셨죠.
우리가 해도 된다고 하지 마시라고 말리면 그러셨어요.
"에구, 여자들만 살면서 이 넓은 뜰은 우짤라꾜.. 그라고 다음에는
저 포치쪽에 나무들 페인트 칠 해야 되겠다."
하시며 또 환하게 웃으셨어요.

 

근데 신부님 있자나요,
저는 그래도 환하게 웃으시는 신부님 기억 한자락 잡고
이렇게 살면서 위로를 받는게 얼마나 큰 은총인지 몰라요.

 

힘든날이면 그렇게 불쑥 찾아 오셔서 함께 해 주시던 신부님을
제게 찾아 오시는 예수님처럼 생각할수 있는 제 마음이,
그 마음에 스며드는 평화가,
그 평화가 주는 기쁨이,
그 기쁨이 주는 힘이,
그 힘으로 열심히 살아 갈수 있다는 그 축복이
제게는 참 감사한 일이었어요.

 

그리운 신부님,
뒤돌아 생각해보면
신부님께서는 진정한 사제의 길을 걷지 않았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저의 가족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교우들께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하셨음을 알았습니다.
신부님께서 어려운 교우들을 찾아 다니시고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시는 것을 본 다른 교우들은
신부님의 말씀에 따라 도움을 주었습니다.
작은 사랑의 공동체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신부님은 착한 목자이셨습니다.
20년 세월이면 강산도 두번 변하는데
그동안 흐른 시간으로 많은사람들도 변하고
또 많은 것들이 바뀌고 변했지만
예수님을 닮은 사제들은 변함이 없이
자신의 양들을 돌보고 아끼고 사랑하는
착한 목자이시길 저는 기도합니다.

 

그리고 저는 신부님을 만났던 그 은총으로
항상 사제들을 존경하고 믿을 것입니다.

 

신부님, 사랑합니다.
오래 오래 그리고 항상 기억하겠습니다.
신부님의 환한 웃음을...

 

 

 

한마음 드림.
2010년 5월 4일

성모 성월에 고 조 그레고리오 신부님을 그리며...